👩‍👦아들이 된 딸, 성소수자의 부모가 되다

나는 성소수자의 부모가 된 지 이제 십 년 차다. 시작은 충격이었으나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큰 변화가 일어날 법도 하다. 충격에서 평화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질곡이 있었는지... 이제는 잊었다. 아이는 그동안 딸에서 아들로 변했고, 나는 활동가가 되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한 지도 어느새 몇 년이 흘렀고,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매달 당사자와 부모가 모이는 정기모임에서의 경험은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모임에는 다양한 당사자들과 다양한 부모들이 온다.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본인이든 부모든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처음 오는 부모는 자식의 커밍아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온다. 이때 부모들은 여전히 충격과 혼란 속에서 격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미 충격에서 벗어나 자식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된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조언을 해준다. 부모의 반응이 충격에서 진정한 수용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섯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이론도 있다. 자책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이르게 되는 최고의 단계가 진정한 수용이다. 그런데 나는 성소수자 부모가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수용 이후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식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긴 해도 아이는 여전히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겪으며 힘들어 하는데. 그래서 부모는 더 나아갈 수 있다. 부모모임 활동을 통해서나 앨라이 활동을 통해서다. 부모모임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 예를 들어 퀴어 축제 참여, 트랜스젠더 추모 행사 등에 함께 할 수 있다. 물론 정기 모임에 와서 다른 부모나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활동과 앨라이 활동은 다른 것일까. 물론 부분적으로 부모모임 활동은 이미 앨라이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자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앨라이 활동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소수자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부모로 시작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당하게 대우받거나 차별받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이에 저항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참여적 시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적극적인 개입이 쉽지 않다. 자식은 받아들여도 여전히 주변에 자신을 성소수자 부모라고 밝히는 게 어렵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들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하지 못 할 수 있다. 어쩌면 성소수자 부모이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다. 성소수자와 직접 관련이 없다면 오히려 더 쉽게 성소수자 친구나 지인을 위해 변호하고 이들을 방어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앨라이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부모가 앨라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노래를 만들거나, 전시회를 하거나, 연극을 하거나, 다큐 영상을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또는 성소수자들의 직장 만족도 조사나 성소수자 상담사들이 어떤 식으로 교육받고 수련을 받는지 연구하는 걸 지원할 수 있다. 또는 성소수자를 돕기 위해 정서적 안정망을 도모하는 단체나 퀴어-프렌들리한 교회를 상상하고자 연구하는 집단을 도울 수 있다. 더해서 성소수자 활동가가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성소수자 단체들, 그리고 성소수자 앨라이들이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서 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이 모든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재단 역시 지원이 필요하다. 이 모든 활동 지원이 기부금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부모가 앨라이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단계가 필요하다. 나는 그 단계의 시작이 기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나서지 못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대신하는 재단을 지원하는 것이다.(이는 단지 성소수자부모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모든 앨라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일테다)

해도 바뀌었고 올해는 기부를 통해 성소수자 부모이면서 멋진 시민 앨라이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